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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 출신, 날개 혹은 굴레? 멤버들의 '속사정'


[마이데일리 = 고홍주 기자] 안방 공략에 나선 아이돌 멤버들의 '속사정'

"아이돌 그룹의 멤버로서보다 연기자로 인정 받고 싶어요."

최근 아이돌 그룹 멤버들의 안방 공략이 두각을 드러내고 있는데 이들에게 말 못 할 속사정도 있다. 워낙 아이돌 일원으로의 이미지가 대중에게 각인돼 있다 보니 정작 연기자로의 꿈은 마음껏 펼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7일 오후2시 경기 일산 드림센터에서 진행된 MBC 새 일일연속극 '춘자네 경사났네'에 참석한 김기범은 "비단 슈퍼주니어의 멤버로만이 아닌 연기자 김기범으로 봐주시길 바란다"는 호소 아닌 호소를 했다.

실제 그는 슈퍼주니어의 이야기가 언급될 때마다 다소 거북한 심경을 드러내곤 했다. 심지어 "가수하려고 슈퍼주니어에 들어간 것은 아니다"는 위험 수위의 벌언까지 서슴지 않는 그의 모습에서는 비장함 마저 엿보였다.

얼마 전 소녀시대의 윤아도 비슷한 내용의 호소를 했다. KBS 1TV '너는 내운명'의 여주인공으로 발탁된 그녀가 최근 드라마 제작발표회에서 "연기와 가수,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놓치고 싶지 않다"고 전한 대목은 에둘러 표현한 것일 뿐 김기범이 발언한 요지와 크게 다르지 않다. .

비단 이들 뿐만이 아니다. 아이돌 출신 멤버들의 이 같은 호소는 이전부터 공식과도 같이 거듭돼 왔다.

물론 아이돌 그룹의 일원이라는 자체 만으로 수많은 팬들과 인기를 누릴 수 있는 '특권'도 있다.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에 열혈 팬들이 주목하고 있으며, 무대 위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도 빠져나오기 힘든 유혹이다. 다시 말해 그 나이대 누리기 힘든 경험들을 이들은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연기자로 첫 발을 내디딘 멤버들의 속사정은 또 다르다. 대다수 언론매체들이 그들을 차별화 된 존재가 아닌 아이돌 출신의 연기 도전으로 초점을 맞추고 있다. 바로 이러한 점에서 '아이돌 출신'이라는 타이틀이 날개도 될 수 있고 굴레가 될 수도 있다는 소리다.

[안방 공략에 나선 슈퍼주니어의 김기범과 소녀시대 윤아. 사진=곽경훈 기자 kphoto@mydaily.co.kr]

by PAUL | 2008/05/08 01:02 | 트랙백 | 덧글(0)

돈살포 혐의 최준섭 연기군수 구속수감

최준섭 연기군수 구속수감

(대전=연합뉴스) 정윤덕 기자 = 지난해 재선거 당시 유권자들에게 돈을 뿌린 혐의(공직선거법 위반)를 받고 있는 최준섭(52) 충남 연기군수가 7일 구속됐다.

대전지법 김성수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을 이날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거쳐 오후 9시30분께 발부했다.

김 부장판사는 "사안이 중대한데다 최 군수가 혐의사실을 대부분 부인, 증거 인멸과 도주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구속 사유를 설명했다. 최 군수는 대전교도소에 수감됐다.

이로써 이번 사건과 관련해 구속된 사람은 최 군수 비서실장 등 공무원 2명을 포함해 모두 8명으로 늘어났다.

검찰에 따르면 최 군수는 전(前) 군수가 공직선거법 위반죄로 벌금 100만원형이 확정돼 당선무효되기 전인 지난해 9월부터 주민들에게 "재선거가 치러지면 도와달라"며 사전 선거운동을 하고 자신이 운영하는 업체의 직원 오모(36.구속기소)씨와 공모, 오씨가 지난해 9월부터 재선거 직전까지 유권자 150명에게 2천600만원 상당의 금품을 건네며 지지를 호소하도록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최준섭 연기군수 구속수감

그는 또 구속된 부하 공무원 2명을 시켜 지난 2월말 중요 증인인 신모(47.여.구속기소)씨의 남편에게 "상황이 급박하니 아내를 잠시 외국에 나갔다 오게 하라"고 종용, 신씨가 지난 3월1일 인도네시아로 출국하도록 한 혐의도 받고 있다.

최 군수는 앞으로 최장 20일 동안의 보강수사를 거쳐 기소된 뒤 벌금 100만원 이상의 형이 확정되면 군수직을 잃게 된다.

이 경우 연기군은 2006년 5.31 지방선거와 지난해 12월29일 재선거에 이어 제4기 민선군수 선거를 세번째 치러야 한다.

cobra@yna.co.kr

(끝)

by PAUL | 2008/05/08 01:02 | 트랙백 | 덧글(0)

항상 앞서가는 HP제품~

내가 좋아하는 브랜드는 HP~



HP제품들, 특히나 프린터들은 워낙에 품질이 좋아서 항상 나를 만족시키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프린터나 컴퓨터와 같은 하드웨어가 아니라,
멋진 소프트웨어로 나를 또 만족 시켜주었다.

HP스마트웹프린팅이라는 제품인데,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웹문서를 프린터인쇄할 때 도움을 주는 제품이다.
컴퓨터 프로그램을 보다 보면, 별 것도 아닌데 왜 이런 생각을 못했을까하는 멋지면서도 간단한 것들을 만나게 된다.

간단히 화면에서 원하는 부분을 딸 수 있는 캡쳐프로그램 같은 것들 말이다.
이번에 HP에서 나온 스마트웹프린팅도 그런 경우인데,
웹문서를 그냥 간단하게 익스플로러를 통해서 출력을 하게 되면 발생하는 많은 문제들을 해결해주는 프로그램이다.
사실 생각해보면 그리 어려운 기술이 아니었을 것 같은데 말이다. ^^



http://h50285.www5.hp.com/hpz/swprinting 에서 다운 받아서 한 번 시험삼아 사용을 해봤는데 역시 좋다. ^^

간단하게 설치를 하고서 실행시키면 된다.
원하는 부분만 설정을 하고 나면 클립으로 저장이 되는데,
이녀석을 편집하기만 하면 된다.
여러개의 클립을 이어붙일 수도 있고, 미리보기를 통해서 실제 출력이 될 것을 직접 확인해볼 수도 있다.
위에 사진처럼 말이다.

그리고 또 하나 맘에 드는 것이 PDF 파일로 저장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요새 안그래도 PDF파일을 사용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간단하게 PDF파일로 저장이 된다니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좋다.

사용법이 복잡하지나 않을까 걱정도 했는데,
프로그램크기 만큼이나 단순간단해서 다행이었다.


이렇게 설명까지 자세하게 나오니, 또한 맘에 들었다. ^^

앞으로 웹문서 인쇄는 당연히 HP스마트웹프린팅으로 하게 될 것 같다.


by PAUL | 2008/05/08 01:00 | 트랙백 | 덧글(0)

미 2개주 경선, 오바마, 클린턴 각각 1승씩 추가

【워싱턴=뉴시스】

미 인디애나주와 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 6일(현지시간) 열린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버락 오바마는 예상대로 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 그리고 힐러리 클린턴은 인디애나주에서 힘겹게 나마 승리해 1승 1패를 기록했다.

그러나 이번 경선에서도 힐러리 클린턴은 극적인 반전이나 커다란 승세 변화를 몰고오는데 실패, 남은 일정에 관계없이 앞으로 경선 일정을 줄여 오바마를 중심으로 승자를 가리자는 목소리가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인디애나주에서 72명, 그리고 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 115명 등 모두 187명의 대의원을 놓고 벌어진 치열한 경선에서 오바마는 90% 이상의 흑인들이 대거 지지한 가운데 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 가볍게 승리했으며, 근로자 계층이 많은 인디애나주에서는 클린턴 후보가 초반의 지지세를 많이 잃은 채 적은 차이로 이겼다.

오바마는 2025명의 대의원이 필요한 이번 대선후보 지명에서 이번 경선 전까지 1745명을 확보했었으며, 클린턴은 1608명을 확보했던 상황이었으며, 이날 경선 결과에서도 역시 어느 한쪽으로의 두곽을 나타내지 못한 채 '187명 나누기'에 그쳤다.

오바마는 노스캐롤라이나주 라일리에서 가진 승리 연설에서 "누군가 노스캐롤라이나주가 이번 선거에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말했지만 이곳이 바라는 것은 바로 워싱턴 DC에서의 변화이다"며 클린턴의 지지 호소에도 자신에 승리를 안겨준 이곳의 주민들에게 감사했다.

오바마는 노스캐롤라니아주 흑인 표의 약 91%를 확보한 것으로 나타났으나 클린턴은 고작 6%에 그쳤고, 백인들 가운데에서는 60%가 클린턴을 지지했으나 오바마 지지세는 38%로 집계돼, 흑인들의 몰표가 역시 흑인 유권자가 30%대인 이곳을 비롯한 8개 주의 승리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성별로 보면 오바마는 남성 유권자의 57%가 지지한 반면 클린턴은 39%의 지지만을 얻었으며, 대신 여성 유권자들 사이에서는 클린턴이 54%로, 42%의 지지율을 얻은 오바마를 다소 앞섰다.

오하이오주와 펜실베이니아주에서 경제를 우려했던 유권자들 대부분이 클린턴을 지지했던데 비해 이곳에서는 51%가 오바마를 지지, 45%를 지지한 클린턴 지지세를 앞서 경제 관련 이슈에서도 클린턴은 지지세를 잃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많은 민주당 유권자들은 이번 인디애나와 노스캐롤라이나주 경선을 계기로 클린턴 진영이 커다란 반전을 보이지 못한 채 한계를 보였다면서 이미 굳어진 승세에 따라 이제는 경선을 어떤 방식으로든 끝내고 후보자를 내세워 대선 준비에 들어가자는 요구가 팽배해지고 있다.

최철호특파원 hay@newsis.com

by PAUL | 2008/05/08 00:32 | 트랙백 | 덧글(0)

68혁명은 어떻게 시작됐나…


권위적 교육제도에

불만 품은 학생들 반기

사회전반으로 좌파사상 확산

프랑스 68혁명은 1968년 3월 파리 낭테르대(현재 파리 10대학) 학생들이 '여자 기숙사를 개방하라'라는 슬로건을 갖고 학내 집회를 가짐으로써 시작되었다.

남자 기숙사는 여학생이 출입할 수 있으나 여자 기숙사에 남학생 출입을 금지시키는 것은 불평등하다며 시작된 집회는 '사랑할 수 있는 자유'를 명분으로 급속히 확산되었다.

파리 당국은 2개월 넘게 지속된 이 시위를 중단시키기 위해 낭테르대를 임시 폐교하게 된다.

하지만 폐교 조치는 학생들을 거리로 내몰아 사태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대학생 8명이 미국의 베트남 침공에 항의해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파리 사무실을 습격했다가 체포되자 학생들은 낭테르대 본부를 점거했다.

슬로건은 남녀 평등과 여성해방, 학교와 직장에서의 평등, 반전·반핵 등 사회 전반의 문제로 확산되었다.

마침내 5월 학생과 연합한 노동자들이 총파업에 들어가면서 한 달 이상 국가 기능이 마비되는 최악의 사태가 벌어졌다.

샤를 드골 정권은 국민의 신임을 묻기 위해 의회를 해산하고 6월 총선거를 실시, 국민으로부터 지지를 받았으나 다음해 국민투표에서 패배해 퐁피두에게 대통령 자리를 내주게 된다.

이후 학생 시위는 줄어들었나 성개방, 반전사상, 평등주의사상, 환경보호운동은 계속 사회에 영향을 미쳤다.

파리 5월 혁명 즈음 미국에서는 4월 뉴욕 컬럼비아대 학생들이 베트남전에 항의하며 학교 행정 부서를 점거했고, 일본에서는 1969년 1월 전학공투회 소속 학생들이 도쿄대 야스다 강당을 점거하고 도쿄대 해체를 요구하는 등 전 세계적으로 학생들의 좌익 운동이 휩쓸었다.

⊙ 68운동의 배경

1960년대 학생 운동은 표면상 전후 베이비 세대들이 기존의 권위주의 질서에 저항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하지만 운동을 주도한 학생들을 보면 모두 네오마르크시즘을 추종하고 있다.

즉 기존의 혁명적 좌파사상에는 반대하면서도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개선해 보자는 유토피아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다.

당시 유럽은 낭비적인 소비사회를 비판하고 "이는 자본주의 자체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는 도식이 유행했는데 많은 학생이 영향을 받았다.

68혁명을 주도한 학생들은 소위 3M으로 불리는 마르크스 마오쩌둥 마르쿠제의 사상으로 무장되어 있었다.

또 프랑스 학생들은 실존주의 철학자인 샤르트르에 많은 영향을 받고 있었다.

프랑스 68혁명은 권위적인 교육제도에 대한 학생들의 불만이 기폭제가 되었다.

당시 프랑스는 제2차 세계대전 후 베이비붐의 영향으로 제4공화국 말 17만명이던 대학생 인구가 10년 만인 1968년 60만명 선으로 증가했으나 교육시설은 이를 따르지 못하고 있었다.

또 학생들은 관념 위주인 탁상공론식 대형 강의실 수업에 염증을 느꼈고 졸업 시험에서 3분의 2가 탈락하는 상황에 대해 불만이 팽배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엄격한 기숙사 생활의 자유화를 주장하는 학생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낭테르대를 임시 폐교시킨 조치가 학생들의 불만을 폭발시킨 것이다.

⊙ 68운동의 영향

68혁명으로 서구 사회는 성이 개방되고 히피족이 등장하는 등 문화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서독에서는 경영위원회에 노동조합원이 참여하는 등 평등주의가 직장 학교 사회 곳곳으로 확산되었으며 '로마클럽 보고서' 발표(1971년)와 더불어 환경보호운동도 본격적으로 벌어졌다.

환경보호운동에 앞장선 대표적인 인물은 오스트리아 태생의 앙드레 고르즈로.

그는 생산 수단의 국유화로는 인간 소외를 극복할 수 없다고 보고 의사결정 과정에 노동자들이 참여하는 정치적 생태주의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급진적인 생태론적 환경보존주의를 주창했다.

여권신장 운동도 확산되었다.

최초의 여권신장을 위한 조직은 'Politique et Psychanalyse(정치와 정신분석)'이라는 단체로 마르크스의 사적유물론과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을 접목하는 시도를 하기도 했다.

박주병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jbpark@hankyung.com

by PAUL | 2008/05/08 00:31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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